평화와 갈등 전환 / / 2015. 7. 6. 00:35

200원짜리 수업



오전 10시 반쯤 출근 시간을 지나고 한가로운 시간, 버스 뒷 자석에 앉아서 이동 중이었다. 비온 뒤라 하늘도 화창하고 아름다운 날이었다.

버스에는 서 있는 사람은 없고, 좌석이 어느 정도 꽉찬 상태였다.



갑자기 버스에 이상한 기운이 맴돈다.


버스 기사: "아줌마 1180원 내면 안되요. 버스 요금 올랐어요. 1300원 내세요."

아줌마: "지금 잔돈이 없어요"

버스 기사: "그럼 천원짜리 내요."

아줌마: "잔 돈 주나요?"

버스 기사: "없어요. 그래도 1300원내야해요."

아줌마: "나 만원밖에 없어요. 그냥 다음 정류장에 내릴께요. 좀 태워주세요."

버스 기사: "1300원으로 버스 요금 올랐어요."

아줌마: "나 잔 돈 없어요."

버스 기사: "마감할 때 내가 내야 해요. 어서 돈 내주세요."

아줌마: "좀 태워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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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의 목소리는 고조되었고, 버스 안의 승객들은 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타야했다.

싸우는 소리를 듣다보니 120원 때문에 저 둘은 미친듯이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지갑에 마침 잔돈이 있었고, 200원만 내면 좀 조용히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서, 화를 내고 있던 아줌마에게 200원을 건내었다. 


나: "지금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저 200원이 있어요. 이거...(200원을 건냄)"

승객1: "아가씨 잘 했어. 그거 내면 되겠네."

아줌마: (대꾸도 안하고 나를 이상하게 쳐다봄..)

나는 민망해서 요금통에 200원을 내면, 버스를 조용히 탈 수 있을 줄 알았다.


뒷자석으로 돌아갔다. 돌아가자 마자 아줌마 아저씨들이 둘러싸며 말을 건냈다. 

승객2 : 나 지금 관악산에서 신내림 받고 왔어요. (그런데 등산객차림이었다.) 아가씨 고마워요. 내가 부적써줄께. (진짜 빨간 머로 급하게 10초만에 멀 써 줬다. 이상해서 내리자마자 버렸다...)
승객3: 아가씨 교회다니지? 나 매일 새벽기도가요. 내일 가서 아가씨 위해 기도할게요.

승객4: 아가씨 이 명함 받아요. 필요한 거 있음 연락해요.(모 중학교에 도배지를 전달하고자 가는 길이어서, 도배지를 들고 있던 모습에 필요해 보였나보다).


이렇게 버스 안에 있던 승객들도 나와같이 내 작은 행동에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을 줄 알고 나에게 감사함을 표현했다.

정말 소리지르고 싸우는 버스 기사와 아줌마의 모습에 마음편히 그 버스에 탄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허걱!! 


버스기사와 아줌마는 내가 돈을 낸 이후에도 계속 싸우고 있었다.
나는 200원이면 될 줄 알고 판단하고 나름 문제를 해결했다고 뿌듯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평화를 공부하고, 어떻게 함께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데, 나는 나를 위한 행동만 한 것이다. 


매번 갈등 상황에서 '갈등 해결'이 아니라 '갈등 전환'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한 행동은 '갈등 해결'이었다.

버스 아저씨는 버스비 인상으로 많은 사람들과 실갱이로 지칠 때로 지쳤을 것이다.
아줌마는 집이 3채나 있었고, 우리 남편 사업도 잘 되었다 등을 말했던 것을 보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었던 것 같다.


젊은 여자가 와서 200원을 건냈을 때 아줌마와 아저씨는 고마움보다는 수치심이 몰려왔던 것 같다. 

아저씨는 지친 삶에 200원도 없어서 신경질 내는 째째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200원을 내면서 아줌마는 경제적으로 힘든데, 200원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 준 것이다.


이 둘의 싸움은 아줌마가 내릴때까지 계속 되었다. 아저씨는 아줌마가 계속 억울함을 호소하니, 어느 순간 싸움을 멈추고, 그냥 듣고 있었다. 아줌마는 좀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억울함을 버스 내릴때까지 호소했다. 




이곳에서 나는 여러가지로 배웠다.



1. 갈등 해결은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인물들이 편하자고 하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승객들은 200원에 조용해 질 것을 기대하고 기뻐하며, 나에게 감사함을 표현했다.

그렇게 갈등이 있을 때, 우리는 빠르고 쉽게 갈등 당사자들을 생각하기 보다 내가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한다.

해결하면, 모두가 그 갈등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을 줄 아는데, 막상 그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진다.



2. 사회 문제, 구조도 갈등 해결에 촛점을 두고 있다. 빈곤, 교육 기회 불평등, 사회복지 등 우리의 사회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보다 갈등을 보고 있는 사람, 실무자 중심으로 해결되고 있다. 갈등을 보고 있기 불편하기 때문에 돈 200원정도만 넣으면 갈등이 해결될 줄 아는데, 당사자들은 갈등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만만 증폭된다. 마치 버스기사와 아줌마가 더 싸웠듯 말이다.



3. 법도 갈등 해결에 촛점에 맞춰있지 않을까? 이 아줌마와 아저씨가 싸워서 경찰서에 갔다면, 그 둘의 마음보다는 사건의 결말을 보고 합의를 이끌어 낼 것이다. 왜 그들이 화가 났는지 묻기 보다는 화가난 원인을 돈에 찾을 것이다. 



4. 짠해졌다. 아저씨와 아줌마는 버스비 인상으로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공통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같은 피해자들인데,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저 위에 계신 분들이 결정한 것으로 서민들의 고통을 전면에서 듣고 있는 사람은 버스 기사 아저씨였다.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사회 구조는 언제 올 수 있을까? 



5. 버스 기사와 아줌마가 원했던 것을 무엇이었을까?

버스 기사는 버스비 인상된 후, 많은 실갱이를 해야 하는 힘든 삶을 좀 알아주었다면 어땠을까?

아줌마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힘든 상황을 좀 알아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민망함과 불편함 때문에 200원을 넣었지만, 아줌마와 아저씨는 200원때문에 아니라 삶의 다른 이유 때문에 목숨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내가 내 전공인 갈등 전환을 했다면 그 두 분은 죽도록 싸우지 않을 것이다.

갈등의 당사자들의 원하던 것과 방향으로 갈등 전환이 되었다면 그렇게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 이거다 싶었다. 갈등 해결도 중요하고, 전환도 중요하다. 

이 둘의 차이를 이론적 바탕으로는 말 할 수 있었는데, 쉽게 설명하기가 힘들었는데, 

버스기사와 아줌마의 싸움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한줄 정리.

갈등 해결은 갈등의 당사자들 보다는 갈등을 다루는 사람, 주변 사람들에게 촛점이 맞춰져 있다. 당사자들의 원하는 것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갈등의 관찰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갈등의 당사자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갈등 전환은 갈등의 당사자들이 원하는 것을 반영하여 주변 사람, 당사자들 모두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갈등 내에 답이 있듯 그 갈등에 머물면서 고민하면 갈등 전환은 저절로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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