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따르릉)
"반은기 선생님이신가요? 000수녀님께 소개 받은 00중학교 교사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학교 내에 장난으로 시작된 폭력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평화 교육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것으로 이 아이들을 만나 주실 수 있을까요?"
정말 존경하는 수녀님이고, 은사님의 은사님이기 때문에 반가웠지만, 때때로 이력서가 돌아서 연락이 닿았을때마다 감사한 일이지만 부담스럽다.
아이들을 상벌을 주는 대신에 교육을 해 달라는 선생님의 갑작스런 요청이다. 마침 하루 종일 아무런 일정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면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여러가지 고민과 생각이 밀려들었다.
선생님의 표현에 의하면 대화가 전혀 될 것 같지 않은 아이들 즉, 문제아 투성이인 아이들을 따로 만나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연극 치료같은 것을 할 수 있으면 해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짧은 시간이 많은 것을 요구하시면서 참 위급한 상황이라고 들렸다.
평화라는 것은 어느 한 그룹에게만 교육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 학생만 모아둔 교육은 더 부담스럽다.
자발적으로 학생들이 즐겁게 시작해도 될까 말까한 교육을 해야 할까는 등의 여러가지 고민이 엄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진행시켰다.
이유는 학생들이 처벌로 두 세시간 청소하는 것보다는 즐겁게 만나서 편안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또 개인적으로 그런 학생들만 교육한 경험도 없었기에 내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함도 있었다. 선생님께는 기대는 하시지 말고 처음 해 보는 것이라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해 보겠다고 했다.
급하게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검토하고 또 검토하면서 학생들에게 필요할 것 내용에 맞게 준비한 교육을 하였다.
학교에 도착하니 그 문제의 학생들은 '학교폭력 경찰상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대신 상담실에 들어가는 기분은 좋지 않았다. 선생님들께서 평화를 공부한 전문가라고 생각하시는 것도 참 부담스러웠다. 교실에 들어서니, 너무 어색하고 긴장된 분위기였다. 냉냉하다 못해 더운 날씨었는데, 손이 차가워질 정도였다.
책상을 밀어 치우고, 예쁘게 준비된 화분을 안에 두고 원으로 앉았다. 딱딱한 공간에서 편안한 공간으로 휘리릭 꾸몄다.
준비해간 활동은 감정을 공감하고,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는 시간을 보냈다. 약간은 무거운 시간일 수 있는데, 학생들을 깊이있게 자신을 되돌아 보았고, 솔직한 심정들을 이야기 주었다. 낯선 사람이고, 처벌대신의 교육이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게 진행되었다.
학생들에게 두 시간의 교육을 평가하도록 했는데, 둘 다 아쉬운 점을 '시간이 너무 짧다'라고 표현하였다. 내가 전달하려고 했는 부분은 배운 것 같다고 표현해 주었다. 너무나 놀라웠다. 누군가의 감정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아야 겠다는 성찰을 말해 주다니!
선생님들도 우리 아이들이 이런 성찰을 했냐고 놀라하셨다.
수업 시간에 집중도 하지 못하는 아이가 이렇게 집중해 주었다는 것도 고마웠다.
내가 교육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진정으로 내가 전달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였고, 그들이 편안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을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수업 후였다. 교감, 담임 선생님들, 상담 선생님과 교육에 대한 평가를 하였다. 학생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 하는데, 학생들의 변화만을 고민하시면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요구하셨다. 학생들을 대하는 주변인들의 변화도 있어야 하는데, 학기말이고 모두가 바쁜 현실에서 될 수 없는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럼에도 학생들을 두 시간정도 안 남은 시간 동안 만나 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그에 응하기로 했다 .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을 선택하고, 학생들과 선생님의 관계의 골이 조금은 좁아 질 수 있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학교라는 공간이 모두에게 행복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업무에 시달려서 말썽부리는 친구들을 문제아로 치부하고 상담실, 프로그램으로 돌리고 계신다. 그런 것이 아니라 진정 가슴으로 학생 한 명 한 명을 만나실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은 구축 될 수 없을까? 학생들은 가슴으로 만나시는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아면서 자라날 것이다. 평화 교육을 하면서 학교의 선생님과 학생을 만나면서 왜 학교라는 공간이 모두를 속박하는 공간인지 모르겠다. 모두가 원하는 것은 즐거운 학교 생활인데, 왜 우리는 서로를 공격하고, 비난할까?
학교에 늘 상주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입장이라서 함부로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누구든 존재를 있는 그래도 편견없이 보아주면 그저 좋지 않은가! 마치 내 존재를 아무 조건 이유 없이 그대로 봐 주시는 부모님처럼 말이다. 이 시각은 학생들과 선생님들 뿐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저 무서운 선생님. 저 말이 안통하는 선생님. 말을 듣지 않은 학생. 이상하고 문제 많은 학생.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시각으로부터 온다. 처음부터 문제 학생과 문제의 선생님은 없다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오늘 학교에서 배운 것은
모든 존재를 그 존재 그 자체로 바라자.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자.
그들이 필요하다는 것이 있고,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하자는 것이다.